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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포옹

향상심이 아닌 비교심과 정서불안으로 마음이 힘들 때 새기는 격언과 실천

세상살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힘들 때 되뇌이며 새기는 명약이 되는 말씀과 실천 사항이 있다. 기본 정서가 불안하게 깔린 점을 인정한다. 향상심이 아닌 비교심은 자격지심을 건드린다. 발상을 전환한다. 왕이라 해도 다 가질 수는 없다. 오늘도 살아낸 나를 내가 칭찬한다.

1. 왜 마음이 힘들까

기본 정서가 불안정해서다. 만 3세까지 기본 정서가 깔린다. 그 시기에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정서가 불안정해진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흔들린다. 

그리고 비교하는 마음을 들 수 있다. 저 사람은 타고나기도 잘했고, 운도 따라 주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나는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하나 갖는 상황이거나 노력해봐야 나아지는 게 없을 때 그렇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끝없이 기약없이 마음이 추락한다. 직시하고 벗어나야 한다. 건전한 향상심은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향상심 이상의 비교심은 독이 된다.

 마음이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억울해서일 것이다. 왜 하필 나만. 왜 내게. 기쁠 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왜 내게, 왜 내게만 이런 경사가 일어났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우울증의 대표증세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십년간 매년 봄에 반복된 우울증을 털어낸 지 27년이 지났다.그럼에도 늪에 가라앉아 일어나기도 힘들 때가 있다. 아침10시까지 누워있다가 간신히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는 날이 있다.

천국, 지옥도 없고 윤회도 없다면 미련없이 딱 생을 마감하겠는데, 사후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니 혹시 그런게 있어서 지금보다 더한 나쁜 상황에 빠질까봐 죽을 수도 없다. 그래서 사고사가 아닌 이상 어떻게든 살아야겠기에 기어이 일어나고자 새기는 문장과 말씀이 있다.

2. 마음이 힘들 때 새기는 말씀과 실천

내려다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나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내려다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올려다 보면 동기부여도 되고 되겠지만 올려다 보기만 하면 좌절하기 쉽다. 친지 중에 긴병 중에 있는 오십대 여성이 있는데 의사들이 이 분을 강철멘탈로 부른다. 

 할당된 모르핀(마약) 주사를 마다하고 병고를 생으로 견디기 때문이다. 그런 강철멘탈님의 말씀인 “내려다 볼 줄도 알아야 해요”는 내게 굉장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밤새 울더라도 아침에는 웃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카렛 오하라도 내일 생각해 보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 라고 했다.

어제보다 나은 나

 나 자신과만 경쟁했다는 최고의 발레리나 강수진님의 말씀은 시기와 열등감에서 신선한 해방이었다. 한 동작을 완성하고자, 어제 보다 더 낫고자 수억번 연습하셨단다. 아,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분이라니. 

 또한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것이 잘 안되면 좌절하기 싶다. 아 내 마음이 그랬구나.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나”를 외치며 스스로를 다독거렸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마치 한글 자모를 처음 배우던 때처럼. 숫자를 처음 배우던 때처럼. 나로서는 시옷과 8을 바르게 쓰기가 무척 어려웠다. 자꾸 옆으로 누워버리는 거다. 그래도 재밌어서 혼자 수없이 연습했더니 어느 순간 섰다.

 그 기억과 경험을 일이 안될 때마다 뭔가를 못할 때마다 새기고자 한다. 건전한 향상심을 벗어나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다독인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내가 좋아, 내가 좋아.

 반드시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성장, 성장하는데 반드시 성장해야 할까. 키도 일정 높이까지 크면 더 크지 않는다. 역량을 키우는 것은 존경할 만하다. 전력을 다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얼마나 흔한가. 

 때로는 최선이 아닌 차선을 다했다는 노교수의 인생이야기에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전력을 다하다 병이 나서 고생하느니 심지어 일찍 죽느니 인생을 길게 보면 아무래도 탁월한 전략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르니 최선이든 차선이든 무엇이든 알아서 선택한다. 짧고 굵게 사는 것도 좋고 가늘고 길게 사는 것도 일장일단이 있다.

이 세상은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고 된다고 좋은 일도 아니다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에서 이 세상은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고 된다고 좋은 일도 아니라고 했다. 원하는 대로 다 되면 이 세상은 혼돈이 된다. 짐 케리 주연의 영화 부르스 올마이티 Bruce Almighty를 봐도 알 수 있다.

 원하는 사람마다 복권1등에 당첨되어 실제 수령액이 푼돈이 되었다. 실력도 안되는 사람이 운전면허에 합격되고 의사면허에 합격하면 어찌 될 것인가. 아찔하다.

이만해서 참 다행이다

이만하니 이게 다 어디인가. 더 나빴을 수도 있었는데 참으로 감사하다 라는 마음을 낸다. 억지로라도 이런 마음을 내면 기분이 나아진다. 실제 그렇다.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면 왼쪽 다리를 부여잡으며 아이고 감사합니다. 한 쪽이라도 멀쩡한 점을 본다. 

 자명종이 울리면 그냥 일어난다. 그냥. 그냥. 일어날까 말까 고뇌하지 않는다. 네. 아침에 눈 뜨면 박수치며 아이고, 살았네 한다. 기쁘고 슬픈 이 감정은 살아있기에 느껴지는 것이다. 살아있음이 전제이다. 이 모든 것은 살아있음이라는 이 거대한 축복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주께서 나를 내가 필요한 곳으로 안배할 것이다

안배란 말에 너무나 마음이 뭉클하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갈림길에서 그리고 길을 알아 볼 수 없어 절망할 때 이 말을 무수히 되뇌이길 잘 했다. 이렇게 살아있으니. 살아 있는 자들 모두 승자이다.

위해危害( 위태로움과 해로움)를 두려워 하지 않음은 주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함이라.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사람은 신앞에 평등하다.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인간들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아무리 뛰고 날고, 막대한 돈과 명성과 재능이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태산아래 뫼이로다.

엉겅퀴는 장미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이 말에 존심과 자존감 모두가 팍팍 살아난다. 고개를 든다.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편다. 고개를 숙이면 마음이 더 처지고 고개를 들면 기분도 올라간다.

실천

스스로 나의 두 팔로 나를 껴앉는다. 내가 나를 안아준다. 그 자체로 위안받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누그러진다. 프리 허그 free hug라고 길거리에서 무료로 안아주는 일이 생각난다. 껴안는 행위는 위로를 준다. 포옹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준다.

내가 나를 끌어안기
내가 나를 끌어안기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 보며 50번 입꼬리를 올린다. 거짓 웃음도 얼굴 운동이 되어 좋고, 뇌는 거짓 웃음과 참 웃음을 구분 못한다. 10초 이상 연속 큰소리 내어 웃으면 더 좋다.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 도파민, 엔돌핀이 생성된다.

 그러면 엔돌핀보다 100배 강한 천연 항암제인 다이돌핀이 활성화된다. 더불어 우리몸의 파수꾼인 천연 킬러세포인 NK세포가 활성화 된다. NK세포는 암세포를 잡아먹는다.

깊이 감동하면 다이돌핀이 분비된다. 이는 엔돌핀보다 1000배 강한 체내의 천연 항암제이다. 크게 감동되어 흐르는 눈물 속에 온갖 회한과 업장이 녹아나서 정화되니 그런 효과가 납득이 된다.

입이 웃으면 얼굴이 따라 웃고 얼굴이 웃으면 몸이 따라 웃고 몸이 웃으면 영혼이 따라 웃는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 육신의 건강이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머리를 열 손가락 손끝으로 두드린다. 일종의 맛사지이다. 부드럽게 그리고 견딜 수 있을 만큼 세게. 손끝은 말초신경이 많은 부분이고 머리도 신체의 말단이다. 말단까지의 혈액공급이 건강의 관건이다. 

 엉겅퀴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꽃들은 서로 시샘하지 않는다. 존재자체를 즐긴다. 시샘하는 이 마음 참으로 못생겼다. 더 못나고 싶지 않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내 세상의 중심이고 왕이다.

 창조주가 있다면 알아서 잘 하실 것이고 이 나를 위해서도 안배하셨을 터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 인샬라Inshallah. 신의 뜻대로 될 지이다. 모든 것엔 존재의미가 있다고 한다. 

 슬픔이나 질병 고난 재난 심지어 전쟁도 존재의미가 있다. 내 이해력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신께서 나를 내가 가장 있어야 할 곳에 안배할 것이다. 그저 나는 우선 나 자신을 밝히련다. 

 내가 어두우면 주위가 어두워지고 내가 밝아지면 내 밝음으로 주위까지 밝음이 퍼질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 필요도 없다. 상대과 이 세상일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연대할 일은 연대한다. 

 내가 이 측은한 나를 다독인다. 동년배 중에 병으로도 사고로든 자의든 자의든 죽은 사람이 많은데 나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 자체로 승리이다. 바로 지금 여기. 나는 나 자신의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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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세계의 중심이고 주인이다. 이 나를 누가 아껴줄 것인가. 그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지만 다들 살기 바쁘고 힘든데 강요할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내 기분은 내가 선택하겠다. 엉겅퀴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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